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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낸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

2013-07-31 794

아래는 교수신문 2012년 11월 7일자 기사입니다.

 “인문학에는 햇빛학문과 달빛학문이 있습니다. 조동일 선생은 창조학문과 수입학문으로 나누죠. 창조학문은 햇빛학문이에요. 햇빛 받아서 모든 게 자라니까요. 자기가 가진 바탕 위에서 자기 논리들을 엮어내는 것이 햇빛학문이라면, 남의 것을 비추는 게 달빛학문이죠.”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을 지냈던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59세, 교육철학)의 주장이다. 그가 「다움에 이르는 길」 시리즈로 첫째 권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지식산업사)를 내놓은 것은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이었다. 문고판 사이즈로 210쪽 분량의 그리 부피가 많지 않은 책이지만, 이게 읽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통념을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그동안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1·2』(1994), 『주체와 욕망』(2000), 『본과 보기 문화이론』(2002),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2005) 등을 펴냈고, 1997년부터 『우리말철학사전 1~5』(공저)을 펴내는 일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을 키우는 일에 앞장섰다. 이쯤 말하면 그가 추구하는 학문의 모습이 짐작될 수도 있다.


  그가 품어온 화두는 한국적인 인문학으로 모아진다. 그는 자신의 지나온 학문적 이력에 관해 “ 한국말의 짜임새, 생김새, 쓰임새 따위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한국인이 일궈 온 논리, 존재, 세계, 인간, 교육, 정치, 덕성, 도덕, 미학 따위가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지 하나하나 풀어내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최근 10년 동안 밥맛도 잃어버릴 정도로 혼심의 힘을 기울였다. 커다란 ‘이론’이나 ‘시스템’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들고 나온 것은 의외로 작지만, 빈틈없는 것들이다.


  나, 저, 우리, 남, 임, 아님, 바뀜, 있음, 없음, 참, 거짓, 속임, 가르침, 배움, 익힘, 어짊, 모짊, 사랑, 다스림, 아름, 그위, 아름다움, 덕스러움, 슬기로움 … 등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념을 다듬어서 이론을 만드는 일’에 그는 전 생애를 걸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한국인 우리가 말하는 ‘나’, ‘저’, ‘우리’와 같은 개념을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我, 己, 自我, 自身, 自性, 唯我, 無我, I, self, ego, identity와 같은 것으로 ‘나’, ‘저’, ‘우리’ 따위를 풀어내는 일은 앞뒤가 뒤바뀐 일이며, 제대로 그 공부가 이뤄질 수 없다. “이런 낱말들은 ‘나’, ‘저’, ‘우리’를 풀어내는 참고 자료이지 바탕 자료가 아닙니다. 이런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나’, ‘저’, ‘우리’, ‘남’을 비롯해 ‘나다’, ‘보다’, ‘떨다’, ‘울다’, ‘어울리다’, ‘아름답다’ 따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는 일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햇빛 인문학은, 자기가 가진 문화와 말 속에서 구축해야 하고요. 그래야 그게 햇빛 인문학이 되는 거죠. 서구가 자신의 것을 바탕으로 그런 인문학을 만들어 왔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진 것을 바탕으로 정말 치밀하게 존재론적 바탕, 인식론적 바탕, 방법론적 바탕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그런 가능성을 발견한 것일까. 그는 서양 개념과 한자로 이론을 만들어오다가 10년 전부터 한자로 만들었던 이론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 이상을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한자를 다 걷어내고 도대체 한국말에서 있다, 이다, 하다, 아니하다, 못하다가 뭘까, 이런 걸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이 우리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방법들을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는 조금 ‘세게’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이 땅의 인문학은 ‘달빛 인문학’이며, 그것마저 다 건성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 인문학은 ‘어질다’를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말의 바탕을 깊게 파고들어간 학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제대로 된 인문학이 없어요. 인문학은 자기가 바탕으로 삼는 모국어의 맥락, 그 삶의 맥락을 파고드는 학문이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없는 거죠.” 『한국인에게 나는 누군인가』에 이어 아름다움, 말, 존재, 가르침, 다스림 따위를 주제로 한 책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모국어의 깊은 고갱이를 더듬어 이를 사유의 언어로 바꿔내고, 이 언어의 결을 다듬어서 ‘이론’을 지향하고자 하는 최 교수의 작업이 그의 말대로 ‘햇빛 인문학’을 일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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